
Critique
자주적인 미학의 접점에서 세계의 선계를 꿈꾼다.
미술평론가 김유정
예술가들은 일생동안 얼마나 변할 수 있을까. 물론 개인적인 편차가 있어서 그 대소경중(大小輕重)은 다를 것이지만 모든 물성(物性)은 변화하는 것이 속성이고, 변화하는 것이야말로 세상의 법륜(法輪)이니 오늘의 나는 어제의 나가 아닌 것과 같다. 시간은 공간 속에서 확인된다. 공간의 변화가 시간을 감지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든 일에는 시작과 끝이 있는 것이고, 그 시작과 끝의 사이 중간 과정은 모든 행위를 근원적으로 의미 있게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시작은 언제나 신선하며 끝은 궁극적으로 중후(重厚)하게 된다.
예술이 변하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이는 주위의 조건, 세상의 흐름이 예술가의 예술 행위를 정지되게 가만히 놔두지 않는 까닭이다. 따라서 예술가는 멈춤과 움직임 속에서 스스로 자신의 예술행위를 조절해야 되고, 이 조절행위가 어떤 방향을 가리키는 지에 따라 변화의 수위는 달라지게 된다. 예술가에게 어쩌면 무의식적으로 변해가는 시간이 있을 수 있겠으나 의식적으로도 자신의 변화의 정도를 가늠하고 조절할 수 있다는 말도 유용하다.
예술 내용의 문제는 늘 미학의 문제와 부딪친다. 이는 예술가 자신의 평생의 문제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이 미학의 문제야말로 예술가 모두가 씨름하는 지고의 가치인데, 예술적 가치란 곧바로 예술의 목적과 결부되므로 예술의 가치추구의 문제는 그것을 향유하는 대중과 만나면서 비로소 의미를 획득한다. 대중없는 예술은 없다. 때로는 대중이 예술을 오도하기도 하지만 예술은 언제나 대중을 앞에서 이끌어 왔다. 대중을 이끄는 예술은 늘 새로움이라는 샘을 필요로 하여 고여 있는 물의 이끼를 바다로 실어 나른다. 그래서 흔히 흐르는 물은 마셔도 독이 없다는 지혜의 담론이 생겨났다. 그렇다. 예술은 바로 흐르는 물이다. 대중이 마셔도 독이 없는 신선한 물. 변화 때문에 썩지 않고, 흐름으로서 고이지 않는 것이 대중들이 바라는 가치 있는 예술이다.
최형양의 최근 작업들은 이 변화의 묘를 살리고 있다. 그의 작업의 큰 변화는 전통 수묵의 형식에서 벗어나 서양화 기법을 도입한 것이다. 그렇다고 작품의 내용마저 전적으로 달라진 것이 아니다. 서서히 그리고 천천히 재료상의 차이라는 변화에 순응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동양화 서양화의 구분을 재료상의 문제로 국한시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양복을 입었다고 서양 사람이 아닌 것처럼 재료는 단지 그 사람의 이미지를 바꾸는 형식일 뿐 본질적으로 풍토 자체가 형성시킨 동양이라는 정체성은 변화되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재료는 단지 동양의 이미지를 새롭게 구현해주는 도구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 도구도 자꾸 쓰다보면 점점 동양적 이미지를 실현하는 구체적인 방법론으로서의 새로운 수단이 되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오늘날 동·서양을 구분하는 기준이란 시대정신, 풍토, 사회적 의식, 공동체의 관습에서 발생하는 삶의 태도에서 결정된다. 삶의 태도는 곧 예술적 내용을 형성하는 준거(準據)가 되기 때문에 동·서양의 구별이란 우리의 삶을 기준으로 해 구분되는 것이고, 예술 또한 이것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최형양의 작업이 ‘어디엔가 있을 법 하지만, 어느 곳에도 없는 듯한 느낌을 주는 것’은 매우 흥미롭다. 전형적인 아카데믹한 세련됨은 없으나 세련되지 않음으로써 오히려 일반적인 서양화의 이론에서 멀리 비켜가고 있는 것이 더 이색적이라고나 할까. 자유란 어떤 틀에서 해방되는 것을 말하는데 자유의 전제에는 이미 제도적으로 꼼짝 못하는 상태에서 탈피한다는 적극적인 의미가 들어있다. 우리의 전통 민속화가 일약 파격·분방함을 보이는 것은 문인화의 제도적 틀을 훨훨 벗어난 것과 같은 내용이다.
최형양과 같이 서양의 재료로 동양적 사유를 즐기는 화가도 드물뿐더러 이런 작업은 쉽지도 않은 일이다. 어쩌면 무모하게 보이는 작업임에도 선뜻 길을 나선 것은 오랜 수묵화 작업이 주는 표현의 답답함에 대한 반사작용 때문이다. 최형양의 작업은 그가 그린 수묵화의 기교와 전혀 다른 민속화의 형식처럼 고졸미가 배어난다. 이 고졸미가 이르는 길은 곧, 노자의 말대로 ‘졸(拙)은 교(巧)의 높은 차원’으로 나아가는 새로운 아름다움의 시작이 되는 것이다. 이것은 한국 사람만이 표현해 낼 수 있는 음식맛과 같은 것인데, 한국적으로 ‘표현하는 정곡(正鵠)’이 있다면 반드시 이에 대응하는 ‘분별하는 정곡(正鵠)’도 있어야 하는 것이다. 한국미의 추구라는 것이 한때 유행했던 것처럼 이미 양식화되고 정형화 된 상징 기호들의 배열에 있지 않다. 한국미의 구현이란 한국인의 심성에 드리워진 공간을 드러내는 일, 또 그것의 형상과 색채를 찾아내어 한국인으로부터 정서적 공감을 얻어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대개 오늘날의 서양화가들은 19세기 중반에서부터 20세기말까지 근 100년 동안의 미술운동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 시기는 서양이 식민지 개척 시대와 자본주의 제국의 힘과 무관하지 않았다. 경제를 지배하는 열강들의 세력은 예술도 소유하는 힘의 논리로서의 예술을 만든 것이다. 우리의 선배 화가들은 근대화 과정에서 이것에 열광했고, 식민지 시대 일본으로부터 재수입된 서양화를 수용하고, 그것을 아카데미에 적용함으로써 오늘날의 한국화단은 고착되기에 이르렀다. 아직도 제대로 청산하지 못한 한국미술의 외세적 경향은 이런 무비판적 수용의 풍토에서 비롯된 것이다. 한국미술의 이런 서양적 아우라에 대한 한계는 분명 넘어서야 할 과제가 된 지 오래다.
또한 편협한 국제주의 시각 또한 위험하기도 하다. 서양미술사가 그야말로 구미 중심으로 기술돼 있고 그것을 학습하는 우리들의 정신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인가. 예술이 곧 정신적 작용에 의한 표현작업임으로 이 문제는 매우 중대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경험적으로 이 국제주의가 얼마나 우리의 정신을 교란시키는 지 알 수 있다. 국제주의 본질은 구미주의 변종으로서 세계화라는 이름으로 널리 퍼지고 있는 데 쉽게 생각해 보면, 자주성 없이 세계화의 대열에 앞장 선 꼴과 다르지 않다. 내가 누구인지도 모르는데, 또 무엇을 가지고 세계화를 추구한다는 말인가. 나는 오로지 내가 주체이며, 예술 또한 내 주체가 하는 것이기 때문에, 나라는 주체가 없게 되면 나의 예술 없이 이념화된 예술, 즉 자신도 모르게 남의 예술을 답습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주체도 목적도 없이 여기저기 전전하는 표류자 신세와 흡사하다.
최형양은 예향 남도 출신으로 일찍이 수묵의 충실한 기본을 익혔다. 수묵이 주는 편안함은 시·서·화 삼절(三絶)의 탁현(卓現)의 맛에 비롯되었고, 그 내용 또한 우리의 옛 상징으로 가득 채워짐으로써 무리 없이 한국인의 정서를 자극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전통적 묵법이란 전통 사회의 토대에서 형성돼 수천 년을 이어온 양식이다. 종이와 붓, 채색 안료는 붓의 시대에 맞는 그야말로 전통시대의 산물인 것이다. 따라서 도구의 변화가 의식의 변화를 가져오는 것처럼 물질문명의 부흥은 곧 의식의 변화를 빠르게 교체함으로써 삶의 가치관과 정신세계 자체도 변화를 시킨다. 그러므로 감상자의 의식도, 수용자들의 컬렉션도 변화하는 마당에 전통시대의 양식으로는 오늘날의 시대적 조건을 담아낼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른다.
최형양은 감각적으로 한국화의 한계를 인식했다. 소위 붓과 먹을 중심에 둔 문인화를 포괄하는, 한국화 혹은 동양화가 왜 사람들에게 고답적인 것으로 비치는 지를 경험적으로 감지한 것이다. 미술사의 변화 과정은 곧 시대의 변화 과정과 매우 밀접해 있기 때문에 이를 무시한다면 새로움과 독창성은 없게 된다.
최형양은 주제 면에서도, 현실 세계의 공간으로 보이지만 현실적인 공간 너머의 또 다른 세계를 다루고 있다. 다른 말로, 낙토(樂土), 유토피아, 정토(淨土), 이상세계 등으로 유사하게 말 할 수 있으나, 그는 ‘선계(仙界)’라는 말을 쓰고 있다. 선계란 인간이 갈망하는 인간 세계 너머의 세계다. 그 세계는 현실적인 모순을 넘어선 세계로 가혹한 탐·진·치(貪塵癡)의 세계를 벗어난 이상세계를 말한다.
교교한 달빛이 흐르는 언덕과 바다는 마치 소동파의 적벽부(赤壁賦)를 연상케 한다. 탐라의 바다와 코지(串)가 깊은 산 속의 강과 절벽으로 보이는 것은, 이미 작가는 정신적으로 이상세계를 그리고 있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공간은 탐라이면서, 느낌은 선계의 강으로 보이는 이유가 그것이다. 탐라의 선계는 이미 그림 같은 세계를 꿈꾸었던 한국인들의 사상과 심정적으로 합치된다. 한국인의 마음속에 품고 있고, 그것에 말없이 동조하는 그림 같은 세계는, 결국 공간을 넘어선 또 다른 공간이 아니라, 공간 속에 다른 공간을 만들어 숨겨두는 인간의 욕망의 공간에 다름 아니다. 즉 정신이 만들어내는 공간이라는 점에서 정신의 영역을 벗어날 수 없다는 말이 된다.
최형양의 선계에 대한 생각은《장자(莊子)》의 ‘소요유(逍遙遊)’에 나오는 말과 흡사하다. 소요유란 속세를 초월하여 어떤 구속도 받지 않는 절대적으로 자유로운 인간의 생활을 의미하는데, 그 ‘소요유(逍遙遊)’에, ‘무하유지향(無何有之鄕)’이라는 말이 나오는 데, 자연 그대로의 이상세계를 말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큰 나무가 있어 그 나무를 쓰지 못하는 것을 걱정하자, 장자는 “어찌 그 나무를 무하유라는 마을의 광야에 그것을 심어 두지 않는가”라고 한 말에서 유래한다. 즉 상상 속의 세계에 나무를 심어두면 누구에게 베일 일이 없으므로 걱정을 할 필요가 없고, 또 쓰일 데가 없으니 괴로움도 없다는 것을 비유한 것이다. 왜냐하면 현실 세계는 모든 것이 실용적인 세계이므로 실용주의 세계란 근심과 걱정으로 가득하고 상처와 번민으로 얼룩진 세계이기 때문이다. 최형양의 <탐라의 선계> 시리즈는 바로 정신과 상상이 만들어내는 한국인의 마음이 그리는 실경인 것이다.
역사적으로 사람들은 항상 유토피아를 꿈꾸었다. 최형양의 선계(仙界)는 탐라에서 그것을 보았기 때문이거나, 찾으려고 하는 두 가지 뜻이 들어 있다. 역으로 선계를 볼 수 있다는 것은 세속의 탐·진·치(貪塵癡)를 보았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선계를 꿈꾸는 것이 비록 꿈일지언정 한국인의 정한(情恨)과 감의(感意)에 맞는다면, 그것은 곧 선계를 보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이제 최형양은 한국화의 전통을 기반으로 하여 새로운 한국적 고졸미를 찾아 나선 작가로 인식되어야 한다. 멕시코, 발리, 인디언, 오세아니아 지역의 회화가 보여주는 것처럼, 그들의 생명력은 고졸미에서 구현된 강렬한 민족적인 형상과 색채에 있다. 서구적 세련미가 주류인 과거시대와는 달리 앞으로의 시대는 이 민족적인 형상과 색채로 내용이 채워져야 하는 것이다. 최형양은 고졸미로 서양과는 멀어지고, 한국미에는 더욱 가까워지는 자주적인 미학의 접점에서 세계인을 향해 새로운 선계를 꿈꾸고 있다.